갑옷에 대한 잡설 2

앞서 설명한 부분에서 용어가 좀 혼선을 빚고 있으니, 일단 이 용어부터 정리하죠.
plate mail은 체인메일 위에 요소요소 중요부위를 철판으로 보강한 경우를 말하며, 투구와 팔, 다리 등에만 한정적으로 플레이트를 사용한 체인메일과 플레이트의 과도기의 것부터 코트 오브 플레이트와 체인메일을 혼용한 것까지 폭넓게 일컬습니다. mail이라는 단어는 갑옷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말이지만 완성된 플레이트제 전신 갑옷의 경우에는 mail을 쓰지않고 armour라고 씁니다.
그래서 plate armour는 튼튼하게 완성된 구조를 갖춘 스탠드얼론(?) 통짜 갑옷을 부위 별로 갖춰입은 경우를 말합니다. 브레스트플레이트는 이 플레이트 아머의 호심갑 부위에 해당합니다. 풀-플레이트 역시 플레이트 아머에 포함됩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전신 갑옷 시스템을 플레이트로 갖춘 경우를 말하니까요. 플레이트 아머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에게 로리카 세그먼타타에부터 고딕 아머까지 철판으로 만들어진 갑옷 전체를 폭넓게 일컬는 것으로 사용되지만, 고증 차원에서 엄밀히 말한 플레이트 아머는 이런 의미입니다.
full plate는 ful plate armour를 줄여 일컬는 겁니다. 고딕 아머나 suits of armour 류의, 17세기에 절정에 이른 전신 철판갑옷을 지칭하죠. 체인메일을 안에 착용하는건 풀 플레이트가 아니라 플레이트 메일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애초에 슈트 오브 아머는 관절부를 포함해서 전체를 판금화 한 것이 전제이니까요. 게다가 체인메일은 방어력이 떨어지며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해 유러피안 6 in1이나 킹스 메일, 트리플 메일 같은 식으로 두껍게 짜면 무게가 플레이트에 버금갈 정도로 무거워지기 때문에, 플레이트 아머와 같은 부위에 겹쳐 쓸 이유가 없어 도태됩니다. 일부 기동부위나 스커트를 체인으로 덮는 정도 보조적으로만 사용되죠.
coat of plate는 가죽제 옷 안에 철판을 꿰메어달거나 주머니에 넣거나 해서 만든 헐렁한 철판보강 옷, 현대의 방탄복 비스무리한 구조의 물건입니다. 철판을 매달고는 있지만 철판끼리 꽉 엮여서 구조를 이룬게 아니라 헐렁한 자루옷 비슷한 형상입니다. 헐렁하기 때문에 덴트가 일어나도 상관없는 구조입니다. 위스비 코트 오브 플레이트 같은 물건의 구조를 보시면 손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십자군 시대에 플레이트가 쓰였다면 이놈입니다.

그러므로 찌그러들어서 가슴을 압박한다고 하면, plate mail이나 coat of plate가 아니라 plate armour에나 일어날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plate armour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건 1400년대 이후의 완성된 플레이트를 말하는 겁니다. 풀플레이트가 아니라 플레이트 아머조차도 십자군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말씀하시고자 하는 논지는 이해하겠습니다만, 옳지도 않으며 불가능한 예제를 들어서 잘못된 용어로 얘기를 해봐야 설득력이 없이 사실을 오도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가야 판갑은 판이 비교적 널찍한 플레이트를 사용해서 대단해보입니다만, 사실은 로마제국의 로리카 세그먼타타에와 유사합니다. 제단한 철판을 가죽끈으로 꿰메어 만드는 형태죠. 그러므로 결코 구조적 강도를 논할만한 물건이 아닙니다. 게다가 관절부에 대한 배려가 잘 되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플레이트 메일은 커녕 로리카 세그먼타타에 정도에나 비유할수 있습니다. 또, 플레이트 아머는 1400년대의 물건이지만, 가야 판금은 4~5세기 정도의 물건입니다. 천년 정도나 차이가 납니다. 철을 다루는 기술면에서도 비교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서양 중세 르네상스 시기 플레이트 갑옷이 화살에 뚫린다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가야 판금갑옷을 예로 들어 비교하는건 큰 오류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야 판금 갑옷이 소실되었듯 로마의 로리카 세그먼타타에 역시 조금 쓰이다가 은근슬쩍 사라졌습니다. 플레이트의 계보는 로마 이후 잠시 끊긴체로 체인메일의 시대 이후 자연스럽게 무기와 갑옷이 더 센놈 더 강한놈 더 튼튼한 놈으로 경쟁하며 발전하는 과정에 플레이트가 새로 등장했죠.

아쟁쿠르에서 프랑스 군이 패배한건 비오는 날씨에 진창으로 돌격을 하는 뻘짓을 했기 때문이고, 군중운동학인가 뭣인가 하는 생소한 건축학과는 관계 없습니다. 영국이 건축학을 고려해서 아쟁쿠르에서 준비하진 않았을테니 말이죠. 당시의 잉글리시 롱보우가 철판갑옷을 뚫지 못한건 그 이전에 영국의 장궁에 뜨거운 맛을 본 프랑스가 신형의 중갑을 채용한 반면, 영국 장궁은 이전부터 쓰던 비교적 약한 철제 iron 살촉을 썼기 때문입니다. 아쟁쿠르를 잉글리시 롱보우의 신화로 만든 것은 확실히 오류이긴 합니다만, 살촉의 개량이 되면 못뚫는 것도 아닙니다.

by aholics | 2007/01/26 19:44 | 도서관을 꿈꾸는 창고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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